신용회복경험담
개인회생 경험담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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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발생 전의 일상
저는 26살, 중소기업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었을 때는 앞으로 펼쳐질 사회생활이 기대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매달 월급은 크지 않았지만,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며 나름대로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늘 꿈꿔왔던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자신감을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문제는 바로 그 ‘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월급에 비해 무리였던 고급차 리스를 선택한 게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리스비만 매달 80만 원이 넘었고, 보험료와 유지비까지 합치면 한 달에 120만 원 가까이 나갔습니다. 제 월급의 절반 이상이 차에 묶여버린 셈이죠.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면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예상치 못한 카드값과 생활비가 겹치면서 점점 카드론과 현금서비스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5,500만 원까지 늘었습니다. 리스회사의 독촉 전화, 카드사에서 오는 연체 안내문…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리는 전화벨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습니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마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음 달부터 아끼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개인회생 결심까지
결정적인 계기는 어느 날 직장에서 걸려온 리스회사 전화였습니다. 팀원들 앞에서 빚 독촉 전화를 받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물이 날 뻔했죠. 그날 집에 돌아와 제 통장을 다시 확인했을 때, 남은 돈은 고작 몇만 원. 그제야 더 이상 제 힘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인회생을 결심하기까지는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벌어서 못 갚는다고 법에 기대는 게 맞을까?”라는 죄책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한 달 넘게 고민하며 부모님께 털어놓았을 때, 부모님은 “네가 혼자 무너지는 게 더 큰일”이라며 개인회생을 적극 권유하셨습니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고,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상담을 받으러 갈 때는 손이 떨리고, ‘혹시 내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안 된다고 할까?’ 하는 불안감이 컸습니다.
개인회생 진행 과정
상담부터 실제 인가 결정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처음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많아서 퇴근 후나 주말마다 하나하나 준비해야 했는데, 이 과정이 정말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변제계획이 세워지는 순간,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법원에서 확정된 제 변제계획은 매달 35만 원씩, 3년 동안 갚는 것이었습니다. 총 채무 5,500만 원 중 상당 부분이 탕감되는 조건이었죠.
법원에 출석한 날도 기억에 남습니다. 재판장 앞에 서니 긴장이 많이 됐지만, 판사님이 제 사정을 듣고 고개를 끄덕여주셨을 때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물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매달 변제금을 내기 위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친구들의 모임도 자주 나가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외로움과 자책감에 눈물이 났지만, ‘이 시간만 지나면 다시 새롭게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현재의 변화와 희망
지금은 개인회생 인가를 받은 지 1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변제금을 성실히 내고 있고, 무엇보다 불안한 독촉 전화나 연체 문자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월급에서 35만 원을 떼어내고 나머지로 생활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이제는 ‘내 수입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다시는 무리한 선택으로 제 삶을 흔들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제 작은 목표는 변제 기간이 끝나면 조금씩 저축을 시작해서 언젠가는 제 힘으로 차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혹시 저처럼 사회 초년생으로서 무리하게 시작했다가 빚에 짓눌린 분들이 있다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꼭 상담을 받아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도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제도라는 걸 몸소 느꼈으니까요.